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할 거룩한 특권인 동시에 거역할 수 없는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반드시 온 세계로 확장되어야 할 사명이다. 교회의 선교를 통해서 그의 이름이 모든 민족 가운데서 영광을 받게 될 것이며, 인류가 그 미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아 새 생명을 얻게 될 것이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이 그의 재림에 한 기대속에 확립될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고백할 것은, 비록 항상 같은 정도로 충실하거나 명확하지는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이해해 온 방식이다. 교회의 과업과 총체적인 선교적 의무에 대한 인식은 선교를 독일 개신교회와 1961년에 설립된 WCC의 <세계 선교와 전도분과와위원회>에 융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 분과의 목적은, 그 규약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그를 믿고 구원받도록 끝까지 전파하는 것”을 감당하는데 있다. 이 정의가 신약 성경의 근본적인 사도들의 관심을 반영하며 개신교 선교운동의 선조들이 지녔던 선교에 대한 이해를 회복시키는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확신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조직된 기독교 세계선교는 근본적인 위기로 말미암아 흔들리고 있다. 외부적인 반대나 우리 교회와 선교 단체들의 영적 능력의 약화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 동기와 목적의 음험한 왜곡에 의한 기본적 과업을 바꾸어 놓은 것이 더욱 위험하다.
그 내면적 변질에 대하여 깊이 염려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 선언을 하도록 부르심을 느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자신을 발견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비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그의 구속사역을 지속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와 회중의 지도자들인 우리에게 강조한다. 그들에게 그 영적 사명의 전 세계적인 전망이 계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끝으로, 우리를 각자의 영적 전통에 따라 선교 활동의 진정한 목적을 달성하도록 특별히 부름 받은 모든 선교단체와 협력기관들에게 강조한다. 우리는 당신에게 다음의 논제들을 그 성서적 기초에 근거하여 점검하고, 교
회와 선교,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점점 명백해지고 있는 그 수행 상의 오류나 방식에 관하여 현재 상황에 관한, 이 진술이 정당한지 판단하도록 긴급히 그리고 간절하게 요청한다. 찬성할 경우에 우리는 당신이 서명을 함으로써 함께 이 선언에 동참하며 당신이 영향을 미치는 영역 안에서 이 지도원리들을 따르도록 강권함으로써 회개와 결단을 촉구하는 일에 우리와 동참하여 주기를 호소한다.
1.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이 성경 인용은 New English Bible에 따른 것이다)
기독교 선교는 오직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임과 신약성서에 나타난 사도들과 초대 기독교의 증언에 의해 기록된 그의 구속 행위 안에서만 그 전파의 기초와 목적과 과업, 그리고 내용을 발견한다. 선교는 복음의 본질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시대에 대한 사회 정치적 분석과 비기독교 세계의 요청으로부터 선교의 본질과 과업을 결정하려는 작금의 경향을 반대한다. 우리는 복음이 현대인들을 만나기 전에는 그들에게 가장 깊은 차원에서 말해야하는 바가 분명하지 않다는 주장을 부인한다. 오히려, 사도적 증언에 의하면, 복음은 규범적으로 그리고 단회적(單回的)으로 주어진 것이다. 만남의 상황이란 단지 복음 적용의 새로운 국면들을 제공할 뿐이다. 우리의 기본적 준거의 틀로서의 성서를 포기하는 것은 선교의 혼란과 선교 과업과 총체적 이념으로서의 세상에 대한 의무의 혼동을 초래한다.
2.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존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겔 38:23)
3.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시 18:49, 롬 15:9) 선교의 일차적이며 최고의 목표는 전 세계에 걸쳐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이름만을 영광스럽게 하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의 선교가 더 이상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은 새로운 인간으로 나타남과 새로운 인간성이 모든 사회 영역에로 확장되는 것만큼 그것이 관심사가 아니라는 주장에 반대한다. 인간화는 선교의 기본적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속 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진 우리의 거듭남의 산물이거나 혹은 세계 역사 과정을 통하여 영향력 있는 행위를 수행하는 능력을 가진 기독교 전도의 간접적인 결과이다. 선교적 관심이 인간과 사회를 향해 일방적으로 전개되면 무신론을 초래한다.
3.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4:12) 성서가 그 인격의 신비와 구원 사역을 통해 선언하신 대로 참 하나님이시며참 인간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선교의 기초이며 내용이며 근거이다. 이 선교의 목표는 모든 삶의 분야에서 모든 민족에게 그의 구원의
은사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라는 근거 안에서 하나님께 속해 있는 모든 비그리스도인들에게 그를 믿고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도전한다. 영원한 구원이 그 안에서만 그들에게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 세계의 종교들과 역사적 변화와 혁명들속에 익명으로 너무나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복음의 직접적인 전달이 없이도 그를 만나며 그 안에 있는 구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거짓 가르침
(New Delhi WCC 제 3차 총회 이후 에큐메니칼 운동 가운데 퍼지고 있는)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와 함께 예수의 인격과 사역을 그 인간성과 윤리적 모범으로 한정시키는 비 성서적 제한을 거부한다. 그런 사고 속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다른종교와 이데올로기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 원칙에 동조함으로 그리스도와 복음의 고유성이 포기된다.
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충분히 자격을 가진 일꾼들에 의하여 설교와 성례와 예배를 통하여 그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영원한 구원에 대한 증언과 표현이다. 이 구원은 단 한 번에 모든 인류를 위해 이루어진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십자가에 죽으심에 근거한다.
그러나 개인이 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은 결단을 요구하는 복음 전파와 믿는 자를 사랑의 봉사에 자리 잡게 하는 세례를 통해서이다. 신앙이 회개와 세례를 통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과 같이 불신앙은 그 구원의 거부를 통하여 멸망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적인 구속 행위에 대한 지식이나 이에 대한 믿음과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모든시대의 모든 사람이 이미 중생하였으며, 이미 그와 화평을 이루고 있다는 보편적인 사고에 반대한다. 그러한 그릇된 생각을 통하여 복음화의 사명은 그온전하고 권위 있는 능력과 긴급성을 모두 잃는다. 그것으로 인하여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영원한 운명에 대하여 잘못된 안심을 하도록 속임을 당한다.
5.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선교의 기본적인 가시적(可視的) 과업은 모든 민족들 속에 메시야적, 구원받은 공동체를 불러내는 것이다.
선교적 복음 전파는 모든 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설립하도록 이끌어야 하며 그 교회는 소금과 빛으로 새로운 사회적 환경을 구현하는 실체로 정의되어야 한다.
성령은 복음과 성례를 통하여 교회의 신도들에게 새 생명과 영원한 생명, 그리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영적 교통을 주신다. 그 증언을 통하여 잃어버린바된 자들 - 특히 믿음의 공동체 밖에 있는 - 그리스도의 몸의 구속적 지체로 자리를 옮기게 하는 것이 교회의 과업이다. 교회는 이 새로운 형태의 교제를 이루는 것을 통해서만 복음을 확실하게 제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와의 교제로서의 교회가 단순한 세계의 일부라는 견해를 반대한다. 반대로 교회와 세계의 차이는 구원의 기능이나 구원에 대한 지식의 차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본질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우리는 추정되는 모든 사람의 미래의 구원에 관한 지식을 제외하고 세상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주장을 부인한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와 사회가 순전히 사회적인, 온인류의 화해를 함께 공유한다는 이 세상만을 강조하는 사회 구원에 대한 일방적인 강조를 거부한다. 그것은 교회의 자기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6. 그러므로 생각하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2:11,12)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은 아직 의식적 신앙에 매여 있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주어진다. 비기독교적인 종교나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이 신앙에의 참여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들은 신앙과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전에 자기 자신에게 메워졌던 굴레와 그릇된 희망들로부터 자유함을 얻도록 해야 한다. 이스라엘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옴으로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기독교적 종교와 세계관들도 역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유사한 구원의 길들이라는 그릇된 가르침을 거부한다. 우리는 세속 종교 신봉자들과의 ꡒ그리스도인으로서의 표현과 그들과 주고받는 대화가 회심을 목표로 하는 복음 전도를 대신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그러한 대화는 단지 선교적 의사소통을 위한 좋은 접촉점을 마련할 뿐이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인의 사고와 소망과 사회적 절차들 - 비록 그것들이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밖에 배제된 관계와 분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 을통하면 세속 종교들과 이념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대신하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실제로는 그것들이 모든 종교와의 혼합주의를 낳아 반기독교적 방향을 줄 뿐이다.
7.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기독교 세계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사이에서 인간들 사이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결정적이고도 계속적인 구원 행위이다. 복음 전도를 통하여 새로운 나라와 민족들이 그리스도를 반대하든지 믿든지 결정하도록 점점더 많이 초청받을 것이다.
모든 민족이 그에 관한 증거를 듣고 그 증거에 응답하고 나올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적그리스도에 의하여 주도되는 세계 사이의 갈등이 절정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는 친히 시간 속으로 다시 돌아와 사탄의 마귀적 무력을 해제하시고 자신의 가시적이고 끝이 없는 메사야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우리는 동시에 신약성서의 종말론적 기대가 그리스도의 재림 지연으로 거짓임이 판명되었으므로 이제는 포기되어야 한다는 근거 없는 이론에 반박한다.
우리는 동시에 복음의 영향이나 혹은 역사 속에서의 그리스도의 드러나지 않는 사역에 의해 모든 인류가 이미 보편적인 평화와 정의의 길로 나아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 그로 인하여 거대한 세계공동체로 하나가 될 것이라는 열광적, 유토피아적인 이데올로기를 반박한다. 우리는 메시야적 구원을 진보, 발전, 사회적 변화 등과 동일시하는 것을 논박한다. 이런 것의 치명적인 결과는 사회적 긴장이 있는 곳들에서 사회 개발을 돕고 혁명에 동참하는 노력들이 기독교 선교의 현대적 형태로 보는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딴에는 그들의 궁극적 목적의 방향인 오늘의 시대의 유토피아운동과 선교를 동일시하는 자기 해명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교회들에 의한 정의와 평화에 대한 결정적인 옹호를 긍정하며 우리가 발전을 돕는 것은 ꡒ네 이웃을 사랑하라ꡓ는 그리스도의 명령뿐 아니라 자비와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시의 적절한 실현이라는 것을 긍정한다. 우리는 그 곳에서 선교의 중요한 동반성과 확실성을 본다. 우리는 또한 회심이 가져다주는 인간화의 결과들을 다가오는 메시야적 평화의 전조들로 긍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확정된 신앙을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의 복음과는 달리 우리의 모든 사회적인 성취와 정치에 있어서의 부분적인 성공들은 다가오는 나라의 종말론적인 그의 나라가 아직도” 오지 않았음과 지금도 여전히이 세상의 왕자인 악마와 죄와 죽음의 권세가 아직 멸절되지 않았음으로 인하여 제한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이것이 우리의 선교 사역에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우리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 라고 약속하신 그를 기다리도록 만든다.
(출처 : http://www.davidcho.or.kr )
우리가 반드시 고백할 것은, 비록 항상 같은 정도로 충실하거나 명확하지는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이해해 온 방식이다. 교회의 과업과 총체적인 선교적 의무에 대한 인식은 선교를 독일 개신교회와 1961년에 설립된 WCC의 <세계 선교와 전도분과와위원회>에 융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 분과의 목적은, 그 규약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그를 믿고 구원받도록 끝까지 전파하는 것”을 감당하는데 있다. 이 정의가 신약 성경의 근본적인 사도들의 관심을 반영하며 개신교 선교운동의 선조들이 지녔던 선교에 대한 이해를 회복시키는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확신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조직된 기독교 세계선교는 근본적인 위기로 말미암아 흔들리고 있다. 외부적인 반대나 우리 교회와 선교 단체들의 영적 능력의 약화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 동기와 목적의 음험한 왜곡에 의한 기본적 과업을 바꾸어 놓은 것이 더욱 위험하다.
그 내면적 변질에 대하여 깊이 염려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 선언을 하도록 부르심을 느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자신을 발견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비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그의 구속사역을 지속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와 회중의 지도자들인 우리에게 강조한다. 그들에게 그 영적 사명의 전 세계적인 전망이 계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끝으로, 우리를 각자의 영적 전통에 따라 선교 활동의 진정한 목적을 달성하도록 특별히 부름 받은 모든 선교단체와 협력기관들에게 강조한다. 우리는 당신에게 다음의 논제들을 그 성서적 기초에 근거하여 점검하고, 교
회와 선교,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점점 명백해지고 있는 그 수행 상의 오류나 방식에 관하여 현재 상황에 관한, 이 진술이 정당한지 판단하도록 긴급히 그리고 간절하게 요청한다. 찬성할 경우에 우리는 당신이 서명을 함으로써 함께 이 선언에 동참하며 당신이 영향을 미치는 영역 안에서 이 지도원리들을 따르도록 강권함으로써 회개와 결단을 촉구하는 일에 우리와 동참하여 주기를 호소한다.
1.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이 성경 인용은 New English Bible에 따른 것이다)
기독교 선교는 오직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임과 신약성서에 나타난 사도들과 초대 기독교의 증언에 의해 기록된 그의 구속 행위 안에서만 그 전파의 기초와 목적과 과업, 그리고 내용을 발견한다. 선교는 복음의 본질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시대에 대한 사회 정치적 분석과 비기독교 세계의 요청으로부터 선교의 본질과 과업을 결정하려는 작금의 경향을 반대한다. 우리는 복음이 현대인들을 만나기 전에는 그들에게 가장 깊은 차원에서 말해야하는 바가 분명하지 않다는 주장을 부인한다. 오히려, 사도적 증언에 의하면, 복음은 규범적으로 그리고 단회적(單回的)으로 주어진 것이다. 만남의 상황이란 단지 복음 적용의 새로운 국면들을 제공할 뿐이다. 우리의 기본적 준거의 틀로서의 성서를 포기하는 것은 선교의 혼란과 선교 과업과 총체적 이념으로서의 세상에 대한 의무의 혼동을 초래한다.
2.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존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겔 38:23)
3.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시 18:49, 롬 15:9) 선교의 일차적이며 최고의 목표는 전 세계에 걸쳐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이름만을 영광스럽게 하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의 선교가 더 이상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은 새로운 인간으로 나타남과 새로운 인간성이 모든 사회 영역에로 확장되는 것만큼 그것이 관심사가 아니라는 주장에 반대한다. 인간화는 선교의 기본적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속 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진 우리의 거듭남의 산물이거나 혹은 세계 역사 과정을 통하여 영향력 있는 행위를 수행하는 능력을 가진 기독교 전도의 간접적인 결과이다. 선교적 관심이 인간과 사회를 향해 일방적으로 전개되면 무신론을 초래한다.
3.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4:12) 성서가 그 인격의 신비와 구원 사역을 통해 선언하신 대로 참 하나님이시며참 인간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선교의 기초이며 내용이며 근거이다. 이 선교의 목표는 모든 삶의 분야에서 모든 민족에게 그의 구원의
은사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라는 근거 안에서 하나님께 속해 있는 모든 비그리스도인들에게 그를 믿고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도전한다. 영원한 구원이 그 안에서만 그들에게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 세계의 종교들과 역사적 변화와 혁명들속에 익명으로 너무나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복음의 직접적인 전달이 없이도 그를 만나며 그 안에 있는 구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거짓 가르침
(New Delhi WCC 제 3차 총회 이후 에큐메니칼 운동 가운데 퍼지고 있는)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와 함께 예수의 인격과 사역을 그 인간성과 윤리적 모범으로 한정시키는 비 성서적 제한을 거부한다. 그런 사고 속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다른종교와 이데올로기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 원칙에 동조함으로 그리스도와 복음의 고유성이 포기된다.
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충분히 자격을 가진 일꾼들에 의하여 설교와 성례와 예배를 통하여 그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영원한 구원에 대한 증언과 표현이다. 이 구원은 단 한 번에 모든 인류를 위해 이루어진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십자가에 죽으심에 근거한다.
그러나 개인이 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은 결단을 요구하는 복음 전파와 믿는 자를 사랑의 봉사에 자리 잡게 하는 세례를 통해서이다. 신앙이 회개와 세례를 통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과 같이 불신앙은 그 구원의 거부를 통하여 멸망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적인 구속 행위에 대한 지식이나 이에 대한 믿음과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모든시대의 모든 사람이 이미 중생하였으며, 이미 그와 화평을 이루고 있다는 보편적인 사고에 반대한다. 그러한 그릇된 생각을 통하여 복음화의 사명은 그온전하고 권위 있는 능력과 긴급성을 모두 잃는다. 그것으로 인하여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영원한 운명에 대하여 잘못된 안심을 하도록 속임을 당한다.
5.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선교의 기본적인 가시적(可視的) 과업은 모든 민족들 속에 메시야적, 구원받은 공동체를 불러내는 것이다.
선교적 복음 전파는 모든 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설립하도록 이끌어야 하며 그 교회는 소금과 빛으로 새로운 사회적 환경을 구현하는 실체로 정의되어야 한다.
성령은 복음과 성례를 통하여 교회의 신도들에게 새 생명과 영원한 생명, 그리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영적 교통을 주신다. 그 증언을 통하여 잃어버린바된 자들 - 특히 믿음의 공동체 밖에 있는 - 그리스도의 몸의 구속적 지체로 자리를 옮기게 하는 것이 교회의 과업이다. 교회는 이 새로운 형태의 교제를 이루는 것을 통해서만 복음을 확실하게 제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와의 교제로서의 교회가 단순한 세계의 일부라는 견해를 반대한다. 반대로 교회와 세계의 차이는 구원의 기능이나 구원에 대한 지식의 차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본질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우리는 추정되는 모든 사람의 미래의 구원에 관한 지식을 제외하고 세상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주장을 부인한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와 사회가 순전히 사회적인, 온인류의 화해를 함께 공유한다는 이 세상만을 강조하는 사회 구원에 대한 일방적인 강조를 거부한다. 그것은 교회의 자기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6. 그러므로 생각하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2:11,12)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은 아직 의식적 신앙에 매여 있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주어진다. 비기독교적인 종교나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이 신앙에의 참여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들은 신앙과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전에 자기 자신에게 메워졌던 굴레와 그릇된 희망들로부터 자유함을 얻도록 해야 한다. 이스라엘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옴으로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기독교적 종교와 세계관들도 역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유사한 구원의 길들이라는 그릇된 가르침을 거부한다. 우리는 세속 종교 신봉자들과의 ꡒ그리스도인으로서의 표현과 그들과 주고받는 대화가 회심을 목표로 하는 복음 전도를 대신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그러한 대화는 단지 선교적 의사소통을 위한 좋은 접촉점을 마련할 뿐이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인의 사고와 소망과 사회적 절차들 - 비록 그것들이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밖에 배제된 관계와 분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 을통하면 세속 종교들과 이념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대신하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실제로는 그것들이 모든 종교와의 혼합주의를 낳아 반기독교적 방향을 줄 뿐이다.
7.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기독교 세계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사이에서 인간들 사이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결정적이고도 계속적인 구원 행위이다. 복음 전도를 통하여 새로운 나라와 민족들이 그리스도를 반대하든지 믿든지 결정하도록 점점더 많이 초청받을 것이다.
모든 민족이 그에 관한 증거를 듣고 그 증거에 응답하고 나올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적그리스도에 의하여 주도되는 세계 사이의 갈등이 절정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는 친히 시간 속으로 다시 돌아와 사탄의 마귀적 무력을 해제하시고 자신의 가시적이고 끝이 없는 메사야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우리는 동시에 신약성서의 종말론적 기대가 그리스도의 재림 지연으로 거짓임이 판명되었으므로 이제는 포기되어야 한다는 근거 없는 이론에 반박한다.
우리는 동시에 복음의 영향이나 혹은 역사 속에서의 그리스도의 드러나지 않는 사역에 의해 모든 인류가 이미 보편적인 평화와 정의의 길로 나아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 그로 인하여 거대한 세계공동체로 하나가 될 것이라는 열광적, 유토피아적인 이데올로기를 반박한다. 우리는 메시야적 구원을 진보, 발전, 사회적 변화 등과 동일시하는 것을 논박한다. 이런 것의 치명적인 결과는 사회적 긴장이 있는 곳들에서 사회 개발을 돕고 혁명에 동참하는 노력들이 기독교 선교의 현대적 형태로 보는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딴에는 그들의 궁극적 목적의 방향인 오늘의 시대의 유토피아운동과 선교를 동일시하는 자기 해명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교회들에 의한 정의와 평화에 대한 결정적인 옹호를 긍정하며 우리가 발전을 돕는 것은 ꡒ네 이웃을 사랑하라ꡓ는 그리스도의 명령뿐 아니라 자비와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시의 적절한 실현이라는 것을 긍정한다. 우리는 그 곳에서 선교의 중요한 동반성과 확실성을 본다. 우리는 또한 회심이 가져다주는 인간화의 결과들을 다가오는 메시야적 평화의 전조들로 긍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확정된 신앙을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의 복음과는 달리 우리의 모든 사회적인 성취와 정치에 있어서의 부분적인 성공들은 다가오는 나라의 종말론적인 그의 나라가 아직도” 오지 않았음과 지금도 여전히이 세상의 왕자인 악마와 죄와 죽음의 권세가 아직 멸절되지 않았음으로 인하여 제한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이것이 우리의 선교 사역에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우리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 라고 약속하신 그를 기다리도록 만든다.
(출처 : http://www.davidcho.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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