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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 네트워크에 대한 소개와 역사

jangwg 2010. 1. 4. 14:01
유목민 네트워크에 대한 소개와 역사
(Introducing the Nomadic Peoples Network- Its history)

Malcolm Hunter

유목민 네트워크는 보기 드문 유형의, 아마도 유일한 형태의 선교 조직이다. 아프리카를 품고 영국에서 태동한 후 긴 시간 동안 중동에서 초창기 시절을 보내며 조직의 기반을 닦았다. 이 특별한 조직의 선구자는 엔지니어였다. 당시 엔지니어로서 그의 기술은 시대에 뒤처진 구닥다리였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의 사상과 열정은 굉장히 진보적이었다.
이 세상 모든 창조영역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생명력을 불어넣으시고 이 피조세계의 자라나는 모든 것들의 생명을 지탱해 주시는 분이시나, 그분은 이 모든 과정을 즐기며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

유목민 네트워크에 있어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신 사람들은 1963년에 에티오피아로수단 인테리어 미션으로 불리는 선교(SIM: the Sudan Interior Mission)로 파송 받은 말콤과 쟝 헌터였다.
엔지니어와 간호사였던 그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며 진료소와 병원과 특히 화장실과 상수원을 짓는 등 많은 사역들을 안고 에리트레아(1993년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한 홍해에 임한 공화국; 수도 Asmara - 역자 주)와 에티오피아에 있었다.
나라 구석구석을 둘러보던 그들은 농경생활 대신 동물들을 키우며 삶을 영위하는, 이전까지는 그들이 경험할 수 없었던 매우 이질적인 사회를 체험할 수 있었다.
유목민들은 종종 그들이 키우는 가축들이 농민들의 밭에 들어가 농작물을 망쳐놓아 그곳 거주민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목초지와 물 때문에 또 다른 유목민들과의 충돌도 빈번했다.   
말콤과 쟝이 유목민들의 이런 상황과 문화를 배우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나는 곧 유목민들을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진정 도우려는 이들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유목민들을 두려워했고 또 멸시해 아무도 그들을 예배당 안으로 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유목민들은 쟝이 운영하는 진료소에는 방문했었다. 쟝의 진료소는 비록 외딴 곳에 위치해 있긴 하지만 최첨단 장비들을 갖춘 곳이었다.
‘Guji’
라고 불리는 종족이 있었는데, 이 종족의 남성들은 여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사람을 죽여 그들의 살인기술을 뽐내 이 일대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건물을 세우고 교육 사업을 시작한지 10년이 흘렀고 말콤은 조심스럽게 남부 에티오피아의 다양한 여러 유목민 종족을 살펴봤다. 그리고 고지대에 위치한 개척교회 선교사들을 저지대로 초청해 거칠고 적대적이며 호전적인 사람들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말콤은 아프리카로 오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상아가 발견된 남부 에티오피아의 미개척 여행길을 건너 케냐에서 온 초기 모험가들과 밀렵꾼들의 책을 읽었다. 이 이방인들은 ‘Omo’계곡에 아마도 4개에서 5개의 서로 다른 종족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그들 서로가 굉장히 적대적이라고 판단했다. 그곳에는 외부로부터 통하는 길이 없었기 때문에 말콤과 이 용감한 선교팀은 의료, 상수도시설과 기아구호 음식 등의 기반이 있는 공공 활주로부터 마차를 끌고 그 종족이 있는 곳까지 몇 번씩 왕래했다.
보통 질병이나 기아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면 그들은 자신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선교사들과 의료진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을 환영해줬다. 그럼 선교사 일행들은 활주로주변에 초가를 세우고 며칠간 그곳에서 체류할 수 있었다.
이런 외부적인 변화에 의해 1차적으로 복음은 그들에게 유입되었으며 차차 또 다른 방법들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선교활동 초기 부족의 어린 남성들이 자신들의 남성미를 뽐내기 위해 우리의 동료들을 살해하는 것을 우리는 지켜봐야만 했다. 그들은 종종 이런 동기로 코끼리, 사자, 들소 및 다른 부족의 사람을 죽이는 데 비무장인 선교사들은 가장 쉬운 목표 중 하나였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이 말콤 일행이 유목민족 지도부의 자문역으로, ‘SIM’으로 명명된 수단, 서아프리카와 북부케냐에 걸쳐 개척한 유목민사역 역사의 시작이다.
내가 방문했던 대부분의 선교지에서 발견했던 한 가지는 선교사들이 기존 토착민들 사이에서 거의 획일적인 모습으로 사역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각각의 선교현장이 갖고 있는 특징들이 무시된 채 천편일률적인 모습으로 선교사들은 일하고 있었다.
내가 옥스포드로 돌아가 “Appropriate Development for Nomadic Pastoralists”라는 박사논문을 발표하기까지 나는 유목민 사역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의문을 갖고 고민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친구로부터 런던에서 열린 EMA 컨퍼런스에 초대받았다. 그 친구는 컨퍼런스에서유목민이기에 소외받았던 이들에 대한 우리의 도전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행사장에 약 50여명이 자리해 있는 것을 보고 놀랐었다. 그들은 대부분 선교단체의 대표였고 일부는 학생이었다. 강연에 대한 관심은 높았고, 추후 내가 관심 있는 새내기들에게는 반드시 추천하는, 일종의 교과서가 된 책 “people on the move”를 집필한 데이비드 필립 역시 이날 매우 큰 감동을 받았다. 더 놀라운 점은 데이비드는 책 저술을 마치고 난 후 나와 함께 몽골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유목민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데이비드 외에 그날 대회의 또 다른 중요한 성과는 기존 선교사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유목민들에게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닥터 존 벤더 사무엘이라는 한 중요그룹의 리더였다. 사무엘은 나중에 유목민 네트워크가 창설된 “Horsley’s Green”에 있는 그의 단체 본사에서 첫 모임을 주최했다. 그 자리에서 12명의 사람들로 구성된 유목민 네트워크는 엄마 자궁 속을 나와 탄생하게 되었다. 우리 중 누구 하나 유명하지도 않았고 지도자 위치에도 있지 않았다.
미국 서부지역과 중동의 요르단, 그리고 최근 2009년 모임이 열렸던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3년에 한번 열리는 우리의 정기모임마다 회원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우리의 사역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가능한 한 가장 저렴한 비행기요금을 제공하기위해 우리는 동서 아프리카와 중동, 몽골과 티베트 등 세계 전역을 살피며 회의 장소를 물색한다.

유목민 네트워크가 제공할 수 있는 최대 강점은 무엇인가?

1. 사역 도중 사기가 저하되고 생활고에 지친사람들에게 네트워크는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또한 숙련된 현장경험자들의 유익한 조언들과 사역 노하우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 우리 네트워크 안의 모든 전문가들은 현재 당신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모든 종류의 어려움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우리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2.
우리는 지구상의 다양한 형태의 유목민들과 그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사역의 모델들을 서로 배우고 공유한다. 우리가 현재 실시하고 있는 훈련이나 문화적 접근들, 그리고 타문화에 대한 사전 적응 훈련 등은 아직까지 다른 단체들은 시도하지 못한 것들이다.

3.
유목민 사역을 진행 중인 개인 혹은 소그룹들은 그들 스스로가 처한 다양한 상황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사역 도중 발생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를 방문해 준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도 새로운 환경에 대한 배움의 기회임은 물론 이에 필요한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용기와 동기를 부여해 줄 것이다. 우리는 여러분을 환영한다.

4.
기독교인이 없거나 혹은 기독교인이 있다 할지라도 능수능란하게 현장을 가이드 해줄 수 있는 인원이 없을 경우, 우리는 여러분들의 현장 체험을 도와줄 수 있으며 이러한 기회는 우리에게도 새로운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다.

5.
다양한 유목민들과의 경험과 이 특별한 주제에 대한 나의 박사학위가 다른 선교단체들과 교회들, 그리고 이 미전도종족들에게 선교사를 파송하는 데 있어 열심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굳건한 믿음을 주길 바란다.

6. 3
년에 한번 열리는 정기모임이 각각의 위치에서 외로움이나 오해 등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유목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7.
우리는 어떠한 정식 교육이나 전문가의 프레젠테이션은 없지만 대신 서로의 결과와 경험을 나누며 비공식적인 의견을 나누는 데에 넉넉한 시간을 할애한다.

8.
다양한 조직들이 우리를 방문해 각자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9.
우리 조직은 철저히 자비량으로 유지됨으로 어떤 금전적 지원도 직업적인 관리자도 없다.

10.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단일민족 경험자이다. 나만이 약18가지의 다민족경험이 있다. 그러므로 대체할 리더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 한명의 적임자가 있으나 그는 그 자신의 조직일 만으로도 바쁘다.

11.
우리는 종종 유목민 지도부가 두려워하는, 유별나게 헌신적으로 보이는 거대 선교단체들의 무시를 받을 수 있다.

12.
매우 소수의 단체만이 유목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때로는 사역자들을 병상으로 내몰 수 있으며, 또 소수의 사역자들만이 때론 외로움에, 때로는 생명을 내걸어야만 하는 자기희생적인 위험한 상황에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내던진다.

유목민족 네트워크의 미래는 무엇인가?

20년 안에 매우 긍정적인 상황이 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는 이집트에서 열린 지난 정기모임에서 우리의 잠재력을 꺼낼 수 있는 훈련, 출판, 인재채용 및 전략구상에 대한 조사와 사안에 대해서 각기 다른 책임을 지닌 다양한 사람들의 진지한 토론에 무척 용기를 얻었다.
나는 모임의 창립자이고 유목 부족들에 대한 자문으로서 현재 자리를 유지해줄 것을 권유받았지만, 그 자리를 대신해서 채울 수 있는 유능한 후배들이 선출되는 것을 보고 무척 행복했다. 그는 마지막 사무협의회 전에 자리를 떠야만 했는데 그것이 그에게 좋은 공부가 됐을 것이다. “너무 바쁘게 살지마!”
나는 좀 더 유능하고 컴퓨터를 이용할 줄 아는 새로운 세대의 리더가 미전도종족선교는 물론이고 발전 중인 중요 선교단체와의 관계에서 행정적, 경영적 차원에서 적합하다고 믿는다.
우 리의 다음단계는 그동안 우리 조직인 보낸 역사 속의 경험과 관계 위에 세워져야 할 것이다. 모든 선교루트를 허락하지 않아 최고로 힘든 도전이 될 것 같은 중국의 티베트같이 어려운 지역에 대한 사역계획들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싶다.

오랜 시간 복음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는 미전도종족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주께서 다시오시기 전에 그들은 복음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우리는 이 힘든 도전을 교회가 양육한 가장 헌신된 후세대들에게 전해주고 있는가?
이 질문이 최종적 결론으로 우리를 인도해 준다.
네트워크만이 아닌 모든 선교단체들은 오랫동안 희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새로운 세대에 집중 선행되어야한다.
우리는 보통 약 10년 정도 그들의 언와와 문화를 익힌 후 에야 유목민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년 안에 토착화된 교회에서 모든 잠재력이 나오고 그 영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기원한다면 또 다른 유목민족에게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3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은 단기간의 사역자들, 특히 두 주간의 여행객들은 절대 맛 볼 수 없는 마라톤과 같은 경주다.